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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부끄러움 모르는 일본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 익투스타임즈
  • 승인 2019.08.0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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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상했으니 지난 역사에 무엇을 했든지 끝났다는 것이다. 그 증거를 일본 정부는 스스로 보여주었다.

서울신문이 8월 2일자 보도한 “日정부, 자국내‘위안부 소녀상’예술제에 제재조치 예고‘가 그것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의 대형예술제에서 전시되자 일본 정부 대변인이 ”사실관계를 파악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의 예술제이지만 보조사업 심사 시점에서의 문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심사단계에서 ’평화의 소녀상‘전시였다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며,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으니 책임을 물어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이 진단한 것처럼 ”제국주의의 마지막을 보는 것“처럼 부끄러움이 없어 보인다.

일명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쉽게 평가하면 더 이상 한국을 좋게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외적인 이유는 일본의 안보에 문제가 될 만한 물자들을 한국에 수출했는데 그것을 한국이 잘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증거가 허구이거나 없다. 오히려 일본이 스스로 규정한 적색국가에 수출한 증거만 쏟아졌다. 결국 보복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지금 전 정부적 차원에서 ‘한일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동안 형제처럼 지냈다는 한일의원연맹의 면담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보면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왜 이렇게 단호할까? 여기서 밀리면 ‘일본 강제징용 보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역사들 때문에 ‘자위군’에서 ‘전쟁군’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아베정권의 계획에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냥 경제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시편 10편에 악한 자의 특징에 대하여 하나님께 탄원한다. 교만하여 욕심을 내면서 탐욕으로 대적들을 멸시하며,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을 넘어지게 하려는 자에 대하여 “여호와여 일어 나옵소서”라고 간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사람을 내버려두지 마시라고 기도하고 있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이 성경구절이 떠오르고, 일본이 생각나는 것은 더운 날씨에 열 받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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