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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의 신학적 성찰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의 신학적 성찰
  • 이정순 교수
  • 승인 2020.12.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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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의 신학적 성찰

이정순 교수(목원대 신학과)

올 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신천지 집단 감염으로 인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을 때였다. 어떤 신학 교수가 한국 교회에 물의를 많이 일으켰던 신천지 집단을 교회가 바로 잡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바이러스를 일으켜서 마침내 신천지 집단을 치셨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견해는 이미 여러 목회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순간 신천지를 치기 위해서 전 세계에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중국 우한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자, 일부 목회자들은 '교회를 핍박하는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이라고 설교 시간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위의 두 견해만 가지고서도 많은 문제가 발견된다. 아무리 신천지 집단이 사이비 이단으로 개신교는 물론 사회에 많은 피해를 주고 물의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렇게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가 그들을 심판하는 수단이라면 하나님은 너무도 편협하고 이기적인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천지에 속해 있는 사람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소중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비참한 바이러스 사태를 그들에게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또 중국에 대한 심판 역시 기독교인들을 사랑하려는 심정은 개인적으로 이해되지만 여기서도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이 전세계적으로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는 견해는 매우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금 이 순간도 바이러스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는 너무도 잔인한 생각이다. 하나님은 세계를 선하게 창조하셨고(창1:31), 특정 인간들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사랑하시며(요3:16), 선인과 악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마5:45)이 아니신가? 이런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구약시대나 있을 법한 심판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면 구약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가 굳이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종말의 때, 하나님나라가 완성될 때 정의의 실현과 악의 심판을 모든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종말의 의미 역시 신학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로 전세계에 확산된 바이러스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심지어 2020년 12월 4일 현재 미국에서는 3초에 1명씩 바이러스로 죽어가고 있다. 이 비극의 시대에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일이 먼저일텐데, 이런 일은 뒤로 하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양 사태를 판단하고 해석하는 일을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신앙적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런 비극적인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쉽게 단정 짖지 말고 먼저 자신을 겸손히 돌아보고 성찰하며 고통당하는 이웃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이지만 우리 현실은 정말 다른 것 같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심판’이라는 눈으로 어둡게 만드는가? 대재난의 때에 단골 손님처럼 등장하는 ‘심판의 신’은 우리가 믿고 예배하는 하나님이 맞는가? 그런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자들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자신은 의인이고 타인들은 죄인이라는 이른바 ‘의인’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는 '팬데믹' 상황에서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이번 사태를 자신의 '신앙적 신학적' 기준으로 쉽게 판단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는 특정한 신학과 교리가 깔려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과연 성서적  신학적으로 옳은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이 글의 목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의 신학적 성찰을 위해 해외의 몇몇 대표적인 주장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보자. 첫째, 미국의 대표적인 개신교 집단인 백인 극우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펫 로버트슨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한 방송에서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원인을 동성혼과 낙태 같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펫 로버트슨 목사가 운영하는 ‘The 700 Club’이라는 방송 전도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와 나눈 질의응답 시간에 나왔다. 한 시청자가 “낙태와 동성혼에 관한 법이 제정되고, 수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 땅을 치유하고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시청자의 질문에는 현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대해 펫 로버트슨 목사는 “당신이 맞다. 아주 중요한 지적을 했다”라고 칭찬을 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의 죄, 특히 동성혼과 낙태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코로나바이러스 치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펫 로버트슨 목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 부흥사로서, 백인 보수 극우 복음주의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평소 이슬람과 동성애 및 페미니즘 등을 증오하며 잦은 막말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낙태와 동성애를 죄로 인식하는 극보수 기독교인들조차 코로나와 같은 재난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하여 말하기를 주저하는 상황인데, 펫 로버트슨의 이런 발언은 매우 적대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이요 비극적인 현 상황을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둘째, 지난 4월 미국 흑인 목사 12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약자에게 더욱 관심을 쏟으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흑인 및 소수 인종이 특히 더 극심한 고통 받고 있다며 지적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인종 및 경제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 성명서를 주도한 윌리엄 바버 목사는 “구조적인 인종 차별과 정책적 폭력으로 인해 흑인의 건강이 위협받고 사회 안전망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 그 어느 때도 아닌 바로 지금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프레더릭 더글러스 헤네스 3세 목사도 “미국 흑인은 태어날 때부터 의료 서비스의 인종차별 정책과 우편 번호에 따른 차별(ZIP code injustice)”이라는 조건 속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피부색이 건강에 위협이 되며, 사망률은 타고난 유전자가 아닌 우편 번호에 따라 달라지는 나라에 살고 있다…우리는 이 국가적 전염병이 우리가 어떤 몸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전파되게 하는, 우리 육체에 행해지는 (부조리한) 정치로부터 적절한 치료와 자원이 올바르게 전해지기를 요구한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약자들에게 관심을 촉구했다. 심판과 같은 진단보다는 당장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치료와 지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말보다도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기념하면서 전한 메시지에서 코로나와 환경문제를 연결지었다. 교황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회중 없이 미사를 집전하면서 “우리는 오직 전 지구적 연대를 통해서, 그리고 사회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돌볼 때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교황은 환경 문제와 자연재해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스페인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시고, 사람들은 가끔 용서한다. 하지만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를 망가뜨린다면, 그 대가는 무척 끔찍할 것이다.” 또한 그는 “지구는 자원을 무한정 착취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뒤 “우리는 지구와 이웃에, 그리고 결국 창조주께 죄를 짓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은 환경 파괴로 인한 인간의 죄를 지적하면서, 이 환경 파괴가 바이러스를 초래했으므로 이제 전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이를 극복하자는 희망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가장 약하고 아픈 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의 극대화로 인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라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오직 전세계적인 차원의 연대와 정책을 통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바이러스 사태에 대해서 이렇게 전혀 다른 시각들이 존재하고, 또 그로 인한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바이러스 사태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프레임으로 쉽게 단정해버리는 자들에게는 당장 연민보다는 공포라는 감정이 앞설 것이다. 죄책감으로 기도하며 낙태찬성론자들이나 동성애자들을 회개시켜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또 바이러스와 무관한 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사랑보다는 심판의 하나님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신학적 원인을 따지기 보다는 당장 고통당하고 죽어가고 있는 가장 작은 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사회적 실천에 더 관심을 갖는다. 더욱이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을 인간의 자연파괴에다 두는 시각을 갖는다면 인간 자신과 환경의 문제에 대해 더 성찰하게 되고, 전 세계적 연대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이렇게 다르다.

올해도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은 예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거룩한 절기이다. 기독교는 대림절로 한 해를 시작한다. 개정공동일과력(Revised Common Lectionary)에 따르면 올해 대림절 첫째 주 토요일 복음서 본문은 마태복음 9:35-10:1, 5-8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활발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병든 자들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36절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표준 새번역)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라는 표현을 영어 성경에는 “그들에 대한 연민(동정심)으로 마음이 움직였다”(moved with compassion on them)번역되어 있다. 예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병들고 고생에 지쳐 있는 이 세계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친히 치유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다.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나라 복음은 이렇게 인간에 대한 불쌍한 마음, 즉 연민과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분 주위에는 항상 소외되고 약하고 병든 자들이 넘쳐났지 않았는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힘이 빠지고 우울해하고 낙심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절실한 때이다.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판단은 우리 신앙인의 몫이 아니다. 과학자나 의학자가 보다 정밀하게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또 신앙인 역시 섣부르게 하나님의 심판 따위로 전가해 버려도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예수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사랑과 연민과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정의를 위한 심판은 지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종말의 때에나 이루어질 것이다.

요즘 새롭게 마음에 들어 온 ‘자애’(慈愛)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이라는 뜻의 한자어가 두 번 반복된 단어이다. 그만큼 사랑을 특히 강조한 단어이다. 흥미롭게도 요즘 이 단어를 영어로는 ‘loving kindness’(사랑+ 친절)로 번역한다. ‘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자비’(慈悲)나 남의 어려움을 딱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뜻의 ‘동정’(同情)보다 ‘자애’는 더 근원적인 단어이다. 자애는 비록 한자 단어지만 사랑을 더 근원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기독교를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요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요일4:8).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 곧 자애이다. 따라서 그를 믿는 우리가 진실되게 남을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할 때 비로소 자비와 동정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인간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며 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고통당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느꼈던 불쌍한 감정, 연민의 감정, 자애의 감정도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예수는 이런 마음과 자세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빌립보서 기자도 그 유명한 ‘비움(kenosis)의 그리스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2:6-8).

모두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이 시대에 자애의 마음과 실천이 요구되는 때이다. 예수처럼 철저히 비우고 낮아질 때다. 섣부른 신의 심판으로 남을 판단하기 보다는 먼저 겸손하게 나 자신과 동료 인간들, 더 나아가 생태계를 돌아보며 성찰할 때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모두를 자애의 마음으로 대하고 보살핀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기도 좀 더 넉넉히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수, 오실 그분을 기다리면서 . . .

성탄 묵상

박효섭

주여,

당신

아기로 오신 뜻은

맑은 살의 아기 되라

하심이오며

별 떨기 고운 빛으로

그 길 인도하심은

별 우러러

새벽처럼 살라

하심이오며

주여, 당신 이 겨울밤에 오심은

나로

이 겨울 긴 밤을

깨어 있으라,

문 두드리다

가는

바람의

발자국 소리

그 외로움의 끝을 알라

하심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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