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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
  • 익투스타임즈
  • 승인 2019.01.0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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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 신학과 이정순 교수
목원대학교 신학과 이정순 교수

새해 새아침이 밝았다. 묵은 해를 뒤로 하고 하나님이 주신 새 해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때이다. 흔히 이때만 되면 기독교인들은 기도원과 같은 조용한 곳을 찾아 새해를 계획하곤 한다.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면서 새해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이번 새해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 힘을 얻을 때이다.

구약성서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 후 이세벨 왕후의 추격을 피해 홀로 광야로 도망 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다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통해 다시 힘을 얻고 호렙산으로 가서 한 동굴에서 밤을 지내게 된다. 여기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자신의 사명을 재 다짐한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에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열왕기상 19장 11절을 보면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표준새번역)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 하신다. 그런데 그 후 엘리야 앞에 강한 바람이 불어 산과 바위를 부수고 또 지진도 일어나고 불이 났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았다. 12절 후반부를 보면 이런 현상들이 지난 간 후 하나님의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고 나와 있다. 이 표현을 개역 개정에서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로 공동번역에는 “조용하고 여린 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도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권의 공인 표준역인 NRSV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완전한 침묵의 소리”(a sound of sheer silence)라고 표현하고 있다. 매우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앞의 내용을 대비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기적적인 사건들이나 온갖 형태의 요란스러운 자연 현상에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온전한 침묵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영어성경의 표현은 침묵 그 자체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매개체임을 알려 준다. 하나님은 온전한 침묵 가운데 침묵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바로 ‘침묵의 소리’ 자체라는 것이다.

▶“완전한 침묵의 소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같이 기도한다. 특히 묵은해를 마무리할 때도 새해를 시작할 때도 우리는 기도로 한다. 하지만 기도란 무엇인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하는가? 모든 종교인이 기도를 드리는데,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무엇이 다른가? 이 시대의 영성가요 실천가였던 헨리 나웬(Henry Nowen)은 『마음의 길: 사막의 영성과 현대의 목회』 라는 책에서 이 문제에 좋은 답을 제시한다. 그에게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영성을 증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그런데 그는 기도 이전에 먼저 침묵에 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침묵은 참된 기도를 드리기 위해 거쳐야 할 전 단계이다. 침묵은 참된 기도가 드려지는 자리이다. 바로 침묵은 영성의 한 주제이다. 그러므로 헨리 나웬은 이를 ‘침묵의 영성’이라 부른다.

▶침묵은 참된 기도가 드려지는 자리

오늘 우리는 너무도 말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엄청난 말의 홍수 속에 빠져서 더 이상 말의 중요 기능인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사람들간의 교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말은 더 이상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말하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말을 잘 못하면 바보로 취급해 버리는 서구 사회와 같은 곳은 더욱 그러하다. 말의 참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나웬은 무엇보다도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웬에 의하면, “침묵은 영적 생활의 중요한 수련들(규율들) 가운데 하나이다.” 침묵은 말의 고향이다. 침묵을 통해 우리는 참된 말의 힘과 결실을 얻게 된다. 그래서 나웬은 사막의 교부들이 광야에 나가 수행했던 침묵의 영성으로부터 배울 것을 권고한다.

먼저, 사막의 교부들에 의하면 침묵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침묵은 우리를 순례자로 만든다. 여기서 순례란 사람이 자기 혀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곧 침묵하는 것을 뜻한다. 성서 곳곳에 말에 대한 경고가 들어 있다. 말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의 훈련이 필요하다. 침묵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서 세상의 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머물 수 있게 만들며, 이런 이유로 침묵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길이다. 그러므로 침묵은 영적 생활에서 따라야할 중요한 규칙들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이를 강조했다. 말의 기능 역시 중요하지만, 말은 영적 여정에서 작은 마을 가운데 너무 오래도록 멈추어 있는 것 같은 감정을 갖게 하고, 너무도 자주 우리가 소명을 받은 순례자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침묵하는 것은 우리를 순례자의 상태로 머물게 한다.”

둘째, 침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을 지킨다. 이는 침묵의 보다 적극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침묵은 내적인 불, 영적인 불, 곧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생명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침묵은 종교적인 정서의 내적인 불을 지킨다. 곧 침묵은 하나님의 내적인 불을 보살피고 살아 있도록 만드는 수련이다. 아무리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체험을 나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쉽게 지쳐 떨어지고, 오히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불이 죽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많은 말이 신앙을 약화시키고 사람을 냉담하게 만든다. 바로 여기에 침묵의 의의가 있다. 침묵은 바로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불을 지키고 다시 살려내어 신앙을 회복시키는 거룩한 규율이요 수련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수많은 말의 유혹에 빠져 있는 자들, 특히 목회자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기 위해 바로 이 침묵의 영성이 필요하다.

셋째, 침묵은 말하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침묵이 미래 세계의 신비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참된 말, 결실을 맺는 의미 있는 말은 침묵에서 나와 침묵으로 돌아가는 말이다. 힘 있는 말은 침묵에서 비롯된다. 침묵에 바탕을 두지 않는 말은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고전 13:1)와 다를 것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신비, 침묵과 말씀을 통해 참여하는 위대한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한 침묵에서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계기를 통하여 침묵을 깨뜨리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침묵의 풍요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거룩한 침묵으로 인도하시며 이 침묵의 여정을 통해 참다운 말의 창조와 재창조를 가능케 한다. 그러므로 이제 온갖 말에 휩싸인 이 시대에 온전한 침묵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해 새 출발을 해야 할 때이다.

(편집자 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정순 교수가 영성을 주제로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향후 글이 오는대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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