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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목회의 본질
다시 생각하는 목회의 본질
  • 이정순
  • 승인 2019.01.2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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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목회의 본질

이정순 교수(목원대 신학과)

한국 교회에서 교회와 목회자들의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곳곳에서 목회자들의 윤리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고, 각종 재정 비리, 목회자 세습 문제, 성 스캔들로 목회자들이 지탄을 받고 있다. 목회자들이 언론 매체의 주제가 되고, 세상의 법정에서까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회개혁실천연대’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특히 교회 내 발생하는 각종 문제는 대부분 목회자의 인사‧행정‧재정적 전횡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의 신앙적, 신학적 자질 부족으로 인해 교회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목사가 먹사로,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목회의 본질과도 관계가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회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말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영성학자이자 실천가였던 헨리 나웬은 목회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한다.“목회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섬김입니다. 곧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억압된 자를 풀어주며 주님의 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눅 4:18). 즉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을 본보기로 삼아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 목회라는 것이다. 이런 섬김으로서의 목회를 위해서 영성도 필요한 것이고 기도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신학자 스워드 힐트너(Seward Hiltner)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아 목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 중심적인 단어는 ‘치유하다’(healing), ‘붙들다’(sustaining), ‘인도하다’(guiding)이다. 목회란 바로 예수님을 매개로 하여 사람들을 치유하고, 붙들어 주며, 제대로 인도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예수님이야말로 이런 목회의 중심이며 주제이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그의 책 『살아 있는 상기자』(The Living Reminder)에서 목회자는 예수님의 치유와 붙드심과 인도하심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reminder)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섬김을 실현할 때, 사람들을 치유하고 삶을 잘 지탱하게 하고, 의미 있고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바른 목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현대 목회의 중심과제 중 하나는 인간 치유의 문제이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율이 급증하며,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바야흐로 사회 곳곳에서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목회자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몇 번씩 이혼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태어나는 세대들은 일생에 평균 2.5번씩 결혼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학자들은 진단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을 당연히 축하해 주어야 한다고까지 말을 한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파괴되고 병들어 있다. 이제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 어떻게 이들을 치유하느냐가 중요한 목회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인간 치유의 문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며, 구원의 대체 용어라고 생각된다. 헨리 나웬에 의하면 이 시대의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여 고통받는 자를 치유하는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상처입은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통해 이루신 구원사건과 연결시킴으로 치유가 이루어지도록 이끄는 자들이다.

목회자는 ‘상처받은 치유자’

헨리 나웬은 그의 초기 저작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에서 치유의 문제를 보다 더 감동적으로 서술한 바 있다.

사역자의 부르심은 자신의 시대가 처한 고통을 그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음으 로부터 그의 사역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 . . 그의 사역이 진실한 것으로 여겨지는 길 은 자신의 마음으로 직접 경험한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통해 얻은 상처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방법을 사역자가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면, 진정한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나웬은 치유의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루는데, 그에 따르면, (1) 목회자는 기억하는 일을 통해 치유하고, (2) 기억하는 일들을 통해 개인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고통받는 모든 인류의 상처와 연결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겪으시는 엄청난 고통과 끊임없이 연결시킴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치유가 일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기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회 현장 속에서 그 자신이 수많은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통해 오히려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동일화하며, 치유할 수 있는 자로 변화된다. 바로 목회자는 ‘상처받은 치유자’이다.

나웬은 여기서 치유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치유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이 더 큰 고통의 한 부분이며, 우리의 슬픔이 더 큰 슬픔의 한 부분이며, 우리의 경험이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고 하신 그리스도의 더 큰 경험의 한 부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치유가 일어나게 하는데, 이 때 치유를 베푸시는 분은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인간 소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의 부서진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나웬에게서 특이할 점은 이런 치유가 개인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곧 개인적인 치유뿐 아니라 사회적인 치유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참여해 왔다. 그는 결코 개인의 치유문제를 사회적인 치유의 문제와 분리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목회적 과제는 구체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질병이나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들, 빈곤과 억압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사람들, 세속적 또는 종교적 제도의 복잡한 그물에 사 로잡혀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을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끊임없는 구속 사 업의 일부로서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과 체험을 통해 사람 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세계와 하나님 간에 부서진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 운 일치를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둘째, 목회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가 돌보시고 지탱해 주시는 그런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웬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의 구원 사건을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생명을 주는 기억, 즉 현재 여기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세워 주면서 일상의 많은 위기 가운데서 뿌리 내린 참 존재 의식을 우리로 하여금 갖게 해주는 기억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란 신자들에게 이런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자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현존과 부재(不在)를 동시에 강조함으로 이런 역할을 한다. 곧 항상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그분의 현존과 지탱하심을 강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서도 이런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치의 감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 본회퍼야말로 좋은 예이다. 곧 하나님의 부재와 현존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 속에서 서로를 붙들어 주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현존과 부재의 목회를 실천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목회자는 항상 신자들의 요구에 응하는 현존과 실재의 목회뿐만 아니라, 스스로 창조적인 부재를 통하여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목회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웬은 목회자가 분주함과 유용성과 필수성과 같은 기도의 허상들에서 벗어나, 침묵의 기도, 때때로 쓸모없게 느껴지는 그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현존 속에 더 깊이 들어가라고 말한다. 즉 목회자가 진정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늘 하나님 앞에 기도로 침묵하고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웬은 이렇게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빈 마음으로 무력하게 있으면서 모든 것이 은혜이며, 아무것도 단지 우리의 고된 노력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 없음을 선언하는 한 방법이다. 참으로 하나 님을 위해 우리 시간을 써 버리는 것이 바로 사역(목회)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우리 사역자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노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다가가신다는 것을 기억시켜 주기 때문이다.

셋째, 목회는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영적인 안내자이다. 여기서 기억은 다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현재의 우리를 지탱케 한다. 더 나아가 기억은 미래를 인도하고 삶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준다. 그러므로 목회자가“살아있는 기억장치가 된다는 것은 기억하는 일을 통해 자신들이 맡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는 예언자가 됨을 의미한다.”

나웬에 의하면 기억은 단지 과거의 모든 일들을 철저히 성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들은 성찰 이전 단계에 이미 우리 자신 안에 들어와 피와 살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뢰와 사랑과 용납과 용서와 자신감과 희망에 대한 기억들이 우리 존재 안에 들어와 우리의 기억이 된다. 이런 기억들은 위기의 때에 다시 살아나 큰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런 기억들이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런 기억들이 우리를 도와 믿음으로 이상을 향해, 더 나은 상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기억 한 가운데에 예수님이 계시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앞으로 어려운 시간이 닥칠 때 그들에게 기억할 것을 촉구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일들을 말하여 두는 것은, 그 일들이 이루어지는 때가 올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한 말을 도로 생각나게 하려는 것이다”(요 16:4).

그렇다면 목회자는 신자들을 어떻게 인도하는가? 목회자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대결케 하고(confronting) 영감을 불어넣는(inspiring) 두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먼저 대결케 한다는 것은 예언자들의 사역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환상, 거짓된 장벽들,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들, 정신적이고 영적인 사슬들을 폭로하고 벗겨내는 고통스러운 일을 뜻한다. 목회자는 이런 대결케 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신앙인들이 본래의 이상을 되찾게 하고, 위대한 비전(영감)이 시작되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위대한 예언자들과 개혁자들의 삶이 이를 잘 말해준다. 대결케 하는 일은 고백과 회개를 촉구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일은 새로운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삶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목회자는 바로 이런 두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더 나아가 이런 인도자가 되기 위해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하는 일을 통해 먼저 그 말씀들을 가슴 속에 새길 수 있어야 한다고 나웬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목회자의 피와 살이 될 때, 새로운 세계를 안내하는 진정한 기억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웬에 의하면, 묵상은 지적인 성찰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묵상’이다. 나웬은 중세 베네딕트 수도회 신학자 장 러끌락(Jean Leclercq)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묵상은 성서 본문을 읽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존재 전체로 깨닫는 것이다. 그 구절을 입으로, 발음하는 몸으로, 그 구절을 마음에 새기는 기억으로,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는 지성으로, 그 구절을 실천에 옮기려는 의지로 깨닫는 것이다.”사람들에게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슬픔이 아니라 기쁨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상기시키기 위해, 또 자신보다는 바로 이런 하나님을 상기시키기 위해 목회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묵상을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묵상은 결코 신비적이고 내면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된다.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는 때때로 좌절하고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과연 목회자 자신이 이런 치유와 지탱과 인도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하고 묻곤 한다. 헨리 나웬의 다음과 같은 말은 목회자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목회의 큰 신비는 우리 자신의 약점과 한계에 압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너무도 명료하게 거룩한 상담자이신 하나님의 영을 우리 자신을 통해 비추고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칭찬 보다는 지탄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목회의 본질을 되새길 때이다. 그리고 목회의 본질을 되새겨 목회자가 바로 설 때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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