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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우리 영성
우리 민족, 우리 영성
  • 이정순 교수
  • 승인 2019.02.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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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우리 영성

이정순 교수(목원대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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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전통명절이 다가오면 한민족 모두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조상에게 감사의 예를 드린다. 산업화 및 서구화의 영향과 도시문화의 발달로 인해 이제 전통 그대로 고유 명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한민족 구성원 모두 이런 전통 명절은 가장 정겹고 기쁨이 넘치는 때임에 틀림없다. 설날은 한국식 신년축제로, 추석은 한국식 추수감사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명절들이 농경 사회를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농경문화가 쇠퇴한 현 시점에 그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흩어져 있던 형제, 자매들이 같은 조상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여 정을 나눌 수 있는 중요한 절기라는 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대열에서 언제나 소극적이거나 주춤거린다. 그것은 극보수적인 신앙에 입각해 민속명절을 여전히 이교도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로 보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같이 조상을 기리는 차례에도 끼지 못하고, 조상의 묘를 찾는 성묘 대열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전통 명절이 되면 이 땅의 기독교인들은 더 많은 갈등과 고민에 싸이게 된다. 혹시나 십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 않을까 고민하곤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제사 거부로 인해 갈등과 싸움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현재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전통 문화와 관련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제사 문제이다. 한국의 제사 문화는 서구에는 없는 매우 독특한 문화이다. 설이나 추석, 또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 죽은 조상을 산 조상처럼 간주해 절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예를 표하는 유교식 제사문화는 한국에만 발달된 매우 독특한 문화이다. 유교의 본고장 중국도 한국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민족은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절로 예를 표했다. 1883년 조선에서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인 보빙사가 미국 대통령을 접견할 때 절을 하고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악수나 목례가 아니고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처럼 절을 한다는 표현 방식은 지금도 설날에 세배를 하거나, 어른께 예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민족의 톡특한 전통인 것이다.

130여 년 전 이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신앙 열정은 뜨거웠으나 선교지의 토착문화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신학적으로 극보수 내지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때문에 신학적 논쟁을 벌일 틈도 없이 바로 한국인들에게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가르쳤고, 그런 가르침이 지금도 변함없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실이다. 십계명 제5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조상을 살아계신 부모의 연장으로 공경하는 것이 왜 죄가 되는지, 왜 조상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어 우상숭배로 비판되어야 하는지 2019년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조상은 조상일 뿐 하나님이 아닌데도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같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조상과 같은 개념도 단지 부모와 같은 효의 대상으로 간주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조상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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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미국에 살았던 필자로서는 서구의 문화가 얼마나 한국 문화와 다른지, 기독교의 경우만 해도 미국 기독교 문화가 한국 기독교 문화와 얼마나 많이 다른지 절감하고 했다.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경우 절이나 목례라는 예법은 없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거나 악수하며 인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내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다는 뜻으로 먼저 웃으면서 간단한 인사를 건넨다. 또 공동묘지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것은 죽은 자를 산 자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처럼 성묘를 가거나 죽은 날을 기념하여 추도예배를 드리지도 않는다.

예배의 경우도 대부분 미국교회들이 주일 낮 예배 한 번뿐 이라고 하면 다들 놀랄 것이다. 아니 새벽 예배도 없고, 수요 예배도 없고, 속회도 없이 어떻게 신앙생활이 가능할까? 목사가 교인들 심방도 자주 못가고 특별한 요청이 있을 때만 허락받고 가야하다니? 크리스마스 때는 그 전날 저녁에 주로 촛불예배가 있고 당일은 예배가 없고, 오히려 가정에서 파티를 갖는 게 미국의 문화이다. 크리스마스 예배보다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더 보편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 기독교가 철저히 개인주의, 실용주의 문화에 뿌리를 내린 기독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한국의 조상제사와 절 문화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제사의 문제는 이미 16세기 중국이라는 컨텍스트에서 예수회 선교사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를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가 전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는 아직도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한 적이 거의 없다. 이 문제가 한국 기독교를 토착화시키고 한국적 영성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문제인데도 130여년전 선교사들의 가르침에 반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하면 금방 이단으로 몰리곤 하는 폐쇄적인 분위기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였던 조용기 목사 같은 보수주의자마저 목회적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제사를 수용했다가 다시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인 적이 있다. 2002년 교계 신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는 “산 부모에게 절하는 것처럼, 제사에서는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의 이단시비에 휘말렸고 곧바로 입장을 철회했다고 한다. 사실 각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명절 때마다 나눠주고 있는 추도예배문은 내용을 예배로 바꿔놨을 뿐 유교식 조상제사의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구에는 이런 추도예식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화를 거부하고 싶어도 사람은 문화 속에 살아간다. 기독교는 2000여년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 히브리 문화와 지중해 유역의 헬레니즘 문화를 토대로 형성되었다. 복음의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예수 당시에는 히브리 문화와 사상 속에서 형성되었고, 바울을 거치면서 헬라 문화의 옷을 입고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 기독교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다시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복음의 외적인 모습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졌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상대적이다. 즉 복음의 진리는 항상 시대적, 지역적 문화 환경의 제약 안에서 선포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성서의 하나님은 먼저 유대 이스라엘이라는 역사적 환경 속에서 유대인 예수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유대교적 사고방식과 용어로 예수를 통해 드러나 진리를 이해하고 표현했다. 대표적인 용어들이 ‘메시아’니 ‘제2아담’이니 ‘인자’(사람의 아들)이니 ‘하나님 나라’니 ‘최후 심판’과 같은 용어들이다. 그런데 이 진리가 헬레니즘의 문화권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자, 비유대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유대적인 용어들이 이해될 수 없었다. 그러자 복음 전도자들은 다시 헬레니즘 문화의 언어를 사용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또 신약 성서 전체가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함에 있어서 유대적인 용어가 아니라 핼라적인 용어인 ‘로고스’를 사용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 원어로는 ‘로고스’이다. 고대 헬라(그리스) 철학에서 원래 로고스는 존재의 원리이자 통일의 원리였다. 문자적으로 볼 때 이 단어는 메시아 개념과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헬레니즘 문화권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로고스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시키는 가장 적절한 용어였다. 요한복음은 이외에도 ‘생명’, ‘빛’, ‘진리’ 등과 같이 헬라 철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럼으로써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는 다르게 ‘영적인 복음서,’ 신비주의 복음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후대 그리스도교의 영성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요한복음서는 헬라문화에 속해 있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쓰여진 복음서였다. 따라서 헬라문화에 익숙한 용어들을 통해 예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던 복음서였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말하면 요한복음서는 핼라식으로 토착화된 복음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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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에게서 시작된 감리교회는 “성경, 전통, 체험, 이성”이라는 4가지 요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4가지 위에 감리교 신학이 토대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1884년 아펜젤러의 선교로 시작된 한국 감리교는 ’토착문화‘라는 한 가지 요소를 더 강조하고 있다. 현재 감리교본부 웹싸이트의 “기독교대한감리회 신학을 위한 지침”에 따르면, 진정한 한국 감리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웨슬리의 유산을 계승하여 복음이 한국 문화에 뿌리 내려 열매 맺게 하는 신학을 수립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런 규정은 1930년 한국감리교회가 자치를 이루면서 한국감리교회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내세운 다음과 같은 지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진보적이므로 생명이 있는 이의 특색을 가졌으니 곧 그 시대와 지방을 따라 자라 기도 하며 변하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적 교회가 되게 하자는 것은 “교회생활 중에 무엇이든지 한국에서 된 것이 아니면 내버린다는 협소한 말이 아니라” 도리어 “고금을 통해 전래한 바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예배에나 행정에나 규칙에 잘 이용하되 한국문화와 풍속과 습관에 조화 되게 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국 감리교회가 진정한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성경, 전통, 체험, 이성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는 진 정으로 복음적이며 한국적인 찬송가를 짓는 과제를 비롯하여 한국 감리교회의 예배, 신조, 영성, 선교 와 같은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전 영역에서 복음이 한국인들의 문화와 심성에 뿌리 내려 열매 맺게 함 을 말한다.

이런 소중한 지침을 토대로 한국 감리교회는 초장기부터 복음의 토착화에 힘썼다. 대표적으로 윤성범의 ’성(誠)의 신학‘, 유동식의 ’풍류(風流)신학‘, 김하태의 ’경(敬)의 신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신학들은 한국의 전통 종교사상을 복음적으로 해석하여 한국적 기독교의 형성을 모색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감리교 전통에 서 있는 목원대학의 경우 초창기부터 이런 토착화 신학의 전통이 매우 강했다. 2대 학장였던 이호운 목사는 이미 토착화 신학의 정신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한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이호운 목사는 1964년 5월 4일 감리교대전신학대학(목원대) 개교 10주년을 맞이하면서 목원대의 정체성과 앞으로 이룰 꿈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오늘날 우리 대전신학교를 보고 “너는 무엇 때문에 세워졌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 할 것입니다.… 우리가 소중히 지니고 실현시키려고 애쓰고 힘쓰는 꿈은 복음의 실제화와 생활화이요 복음의 대중화와 민중화입니다.… 우리의 이상은 … ‘복음을 흙에 개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직자 로 초연하고 성별된 사람들이라 해서 은근히 허세를 부리고 권위를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교역자를 기르기보다, 민중을 이해하고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친구와 일꾼을 기르렵니다.(이호운, 목 원의 꿈,262~263).

“복음을 흙에 개이려는 것”이야말로 토착화의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는 목회적 실천을 통해 복음의 한국적 토착화를 모색했던 것이다. 목원대 제9대 학장을 지냈던 김하태 박사 역시 일찍이 유교와의 대화를 통해 한국 신학을 발전시키려 했던 대표적인 감리교 목회자이자 학자였다. 미국에서의 오랜 목회적 경험과 학문연구를 통해 그는 기독교 복음을 한국의 토양에 토착화시키려 했다. 김하태 박사는 토착화의 문제를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교가 한국 땅에 들어와 한국 종교와의 대화와 수정의 과정을 지날 때 그리스도교는 사상 적, 논리적, 또는 건설적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토착화 신학의 문제가 대두된다. 토착화 신학의 목적은 그리스도교의 진수를 어떻게 한국적인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데 있다. 한국적 언어와 한국적 정서와 한국적 사상을 매개로 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한국인에게 알맞고, 한국인이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을 때, 이 작업은 완성될 것이다.(김하태, 『동서철학의 만남』, 212).

한국에서 유교는 낡고 진부한 종교요 사회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지만, 지난 500여 년간 한국인의 삶 속에서 가장 깊은 영향을 끼쳐온 종교라고 김하태는 본다. 즉 한국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여전히 유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교와 같은 전통 문화를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은 기독교를 한국의 땅에 토착화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제사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시 성서로 돌아가 보자.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선언이 나온다. 이 구절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가 세상에 임할 때는 구체적인 문화, 시공 속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야말로 토착화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원문에는 ’로고스‘가 ’사르크스‘가 되었다고 나와 있다. 로고스와 사르크스는 너무나 대조적인 단어다. 하늘과 땅 끝이라고나 할까. 로고스는 저 하늘 위에, 곧 영적이 차원에 있는 최고 존재를 뜻하는 반면, 사르크스는 낮고 천한 이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을 뜻한다. 이는 우리가 믿는 복음,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는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에 임하여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다는 말을 뜻한다. 그러므로 토착화는 그리스도의 화육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을 통해 나타나셨듯이, 복음의 진리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세상 문화와 현실 가운데 뿌려지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화육의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끊임없이 우리의 심성과 현실문화에 화육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토착화야말로 이 땅에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화육의 사건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신교 선교 135년을 지나면서 이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얼을 통해, 우리 민족의 말과 가락을 통해 우리의 독특한 신앙과 영성을 개발할 때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의 사건을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 한 가운데서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당당히 5,000여 년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셨던 하나님, 오늘 우리 문화 가운데 활동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당당히 선포할 때이다. 잠언 5장 15절에 “너는 네 우물의 물을 마시고 네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셔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신앙과 영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각자는 자신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지금 어떤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가? 우리 교회는 어떤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가? 한국 교회는 어떤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가?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우물에서 물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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